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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 전, 콜레트 Colette에서 칼 라거펠트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는 2층 남성복 코너에서 화이트 셔츠만 대여섯 벌을 골라 입어보고 있었는데 아주 희귀하도록 패셔너블한 순간이었다. 전설적 디자이너의 시그너처 룩이 명맥을 잇는 현장을 목격한 셈이니까. 콜레트는 그런 곳이다. 신선하고 재미난 셀렉션에 정신이 팔려 눈을 따라가다 보면 역시나 홀린 듯 헤매던 셀러브리티와 어깨를 부딪히는 곳. 파리를 방문할 때면 마치 성지 순례하듯 들러야 할 첫 번째 행선지이자 시크한 레디투웨어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점 상품, 건강한 먹거리로 가득한 세상에서 제일 쿨한 만물상이다. 코발트 블루 컬러의 아이코닉한 동그라미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은 드는 순간 절로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고, 콜레트에서 행사가 한 번 열리면 매장은 물론 생토노레 거리 전체가 전 세계에서 날아든 패션 피플로 미어터진다. 그런데 그런 콜레트가 문을 닫는다. 20년 만에 갑자기. 뭔가 문제가 있었나? 파리 패션 신의 상징적 편집매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패션계는 술렁였다. 소비 시장의 판도가 바뀐 걸까? 온라인 리테일러의 약진에 천하의 콜레트도 두 손 들고 만 것인가? 그 자리에 생로랑 매장이 들어선다는데, 결국 부동산 장사였던 건가?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발표한 공식 성명은 이렇다.
“좋은 것에는 언제나 끝이 있기 마련이기에, 20년의 경이로운 세월을 뒤로하고 콜레트는 오는 12월 20일 문을 닫습니다. 창립자 콜레트 루소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은 시기에 도달했고, 콜레트 없이 콜레트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나, 퇴장마저 시크하다. 그간 오너가 얼마나 깊이, 직접적으로 운영에 몸담고 있었는지 새삼 실감나게 하는 인간적 사유에 과연 의문을 품고 손가락질을 할 사람이 있을까? 게다가 문을 닫는 마지막 날까지 굵직한 협업 프로젝트와 이벤트로 달력을 채워놓았고, 생로랑 측과 직원들의 고용 승계를 논의하며 책임을 지니 마무리까지 야무지다. 박수 칠 때 떠난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콜레트가 해내는 중이다.
한편 패션계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파리에 흐르는 트렌드의 공기, 일명 ‘레르 뒤 탕 l’Air du Temps’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은 보물 창고가 사라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특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라 앙델망 Sarah Andelman의 감각적인 레이더에 포착되기만을 기다렸을 신진 디자이너들은 화려한 데뷔를 보장해줄 꿈의 무대 하나를 떠나보내게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지난 3월 스나르키텍처 Snarkitecture와 함께 파리 장식미술관을 거대한 플라스틱 공의 풀장으로 바꿔버린 것처럼, 콜레트의 기발한 협업 이벤트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파리 시민들은 일상의 활력소가 하나 줄어든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콜레트가 패션, 디자인, 요식, 전자 및 문화 산업 전반에 끼친 영향은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지대했다. 지난 며칠간 매체들이 저마다 ‘콜레트를 위한 부고’를 쏟아내며 유난을 떤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슬픔에만 빠져 있기에는 콜레트의 퇴장이 패션계의 현 상황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패션계는 제조, 유통, 홍보와 판매를 막론하고 모든 부문에서 상업성이라는 족쇄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이 독창성을 갉아먹는 시대에 콜레트는 재미와 환상, 즉흥성과 다양성 같은 직관적 사고가 상업적 성공의 원동력이 된 드문 사례였다. 폐업의 이유 또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콜레트 없이는 콜레트가 존재할 수 없어서’다. 시장이 정한 공식, 시스템과는 상관없이 오너가 하고 싶은 것을 해왔고, 이제 휴식이 좀 필요하니 그만둘 뿐, 대기업에 사업을 팔지도 않는다. 이렇게 돈 되는 간판을 두고 양도가 아닌 폐업을 선택한다는 건 운영에 200% 이상을 헌신한 오너만이 내릴 수 있는 자신만만한 결단. 욕망과 악착으로 가득한, 게으른 패션계에 뎅뎅뎅 각성의 종을 울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말이지 한 시대가 저물었다. 이렇게 콜레트가 물러남의 미학을 시전하며 1세대 편집매장의 시대에 변화를 몰고 오니 아쉬운 건 소비자들뿐이다. 앞으로 ‘패션 에디터다운’ 쿨하고 기발한 파리 기념품은 어디서 사야 하나. ‘워터 바’에서 맛있는 샐러드에 곁들일 수십 가지 물을 고르는 재미는 또 어디서 찾나? 아니 무엇보다, 콜레트에서밖에 쇼핑하지 않는다던 칼 라거펠트는 대체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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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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