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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지기 친구와 경리단길에 바를 준비하면서 이름을 궁리할 때였다. 후보 중에는 ‘크로이츠베르크’라는 이름도 있었다. 베를린의 가장 힙한 동네, 서울로 치면 홍대 같은 동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베를린의 동네 이름이다. “뭐? 크, 크로…이크? 이건 정말 아무도 못 읽는다. 바 이름으론 별로야” 하며 펄쩍 뛰었던 그 친구. 하지만 2년 뒤 그녀는 베를린에서 1년만 살고 오겠다며 훌쩍 떠났고, 현재 크로이츠베르크에서 살고 있다. 크로이츠베르크의 ‘크’ 자도 모르던 그녀가 지금은 발음하기도 힘든 퓌르브링거(Furbringer) 거리에 산다.
인생은 이런 것이다. 베를린은 가본 적도 없는 그녀가 그곳에서 살며 베를린에 관한 책까지 펴내고, 때마다 오가는 나는 오히려 서울에 남는 그런 것. 0.1초, 억울하단 생각이 들다가도 단짝 친구가 살고 있는 베를린은 그래서 또 각별해진다. 내가 지금껏 사랑했던 방식과는 또 다른, 나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베를린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2000년대 초반, 상대적으로 싼 물가와 집세 덕분에 유럽의 가난한 아티스트들이 몰려들면서 노령화되던 세계의 대도시들과 달리 베를린은 젊은 에너지가 넘쳤다. 힙스터와 자유와 열정이 넘치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시크함이 도시를 물들였다. 그 결과, 베를린은 세계에서 가장 핫한 도시로 부상했다. 그리고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집세는 두 배로 올랐고, 미테와 크로이츠베르크에 모여 살던 아티스트들은 더 외곽의 변두리 지역으로 밀려났다. 거칠고 투박했던 장소들은 세련되고 고급스런 바와 레스토랑으로 변모했으며, 정부와 기업 차원의 투자 및 개발도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를린은 여전히 뜨겁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중심에 자리하면서도 베를린은 여전히 전 세계의 여행자를 불러모으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도시가 어느 한 방향으로만 일방적으로 가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저명한 컬렉터들이 몰려와 갤러리를 열지만, 베를린에는 작은 독립 갤러리도 몇백 개가 공존한다. 85년 동안 버려져 있던 폐공항은 베를린 시에서 대규모 주택 단지를 만들려고 추진했다가, 시민의 반대에 부딪혀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 채 시민공원으로 개방됐다(여기서는 360도 사방이 탁 트인 활주로의 비현실적인 지평선을 볼 수 있다).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숍이 늘어나지만 쓰던 물건을 내다파는 벼룩시장도 건재하고, 오래된 장소들은 없애는 대신 그 낡은 공간을 살려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스폿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도시 전체에 흐르는 창조적인 에너지와 패기가 여전히 살아 있다. 자유와 다양성을 인정하는, 획일화되지 않는 도시의 기운이 언제나 마법처럼 끌어당긴다.

WritEr & photographer 이동미(<타임아웃 서울> 편집장) Editor 김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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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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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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